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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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밤, 유대인의 지도자였던 니고데모가 조용히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종교적으로 흠 없는 사람이었고,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이었으며, 산헤드린의 일원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은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5)
이 말씀은 단순히 종교적 의식을 잘 지키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선언이었습니다. 니고데모처럼 율법의 외적 형식을 완벽히 지킨 사람에게조차, 예수님은 전혀 다른 차원의 거듭남을 요구하셨습니다. 오늘 이 짧은 구절을 중심으로, 베드로전서 3장 21절과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함께 살펴보며 '물'과 '성령'이 각각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물이란 무엇인가 — 육신의 죽음과 선한 양심
먼저 '물'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단순히 세례라는 의식 자체로만 이해하지만, 베드로전서는 이 물의 참된 의미를 훨씬 깊이 있게 설명해줍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베드로전서 3:21)
이 말씀에서 베드로는 매우 중요한 구분을 짓습니다. 세례의 물은 몸의 때를 씻어내는 위생적 행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세례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입니다. 다시 말해, 세례라는 물의 상징은 우리의 옛 자아, 곧 육신의 정욕을 따라 살던 옛 사람이 죽었다는 고백이자 선언입니다.
로마서 6장에서 바울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그와 함께 다시 살아납니다. 물속에 잠기는 것은 죽음을 상징하고, 물에서 나오는 것은 새 생명으로의 부활을 상징합니다. 이때 죽는 것은 다름 아닌 '육신의 정욕'입니다. 정욕이란 우리 안에 있는 자기중심적 욕망, 죄의 습관, 세상의 가치관에 물든 옛 자아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물로 거듭난다는 것은, 겉으로 물을 뿌리거나 몸을 담그는 의식 자체가 아니라, 그 의식이 상징하는 실제적 사건—곧 옛 사람이 죽고 하나님 앞에서 선한 양심으로 서기로 결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선한 양심이란 하나님 앞에서 더 이상 죄의 지배를 받지 않고, 정직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서는 상태를 뜻합니다. 이것이 바로 '물로 나는' 첫 번째 차원입니다.
성령이란 무엇인가 —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
그렇다면 '성령으로 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물이 죽음과 결단의 측면이라면, 성령은 그 이후에 이어지는 실제적인 삶의 방식을 가리킵니다. 단지 옛 사람이 죽었다고 선언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자리에 새로운 원리, 곧 성령의 인도하심이 채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산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삶을 말합니다. 이는 자신의 판단이나 욕망,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자신의 삶을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서 바울은 성령을 따라 행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는 물로 거듭남에서 이미 죽은 육신의 정욕이, 이제 성령의 능력 안에서 실제로 다스려지고 이겨지는 삶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즉 물과 성령은 서로 분리된 두 개의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거듭남이 가진 두 측면입니다. 물은 옛 자아의 죽음과 선한 양심으로의 결단을, 성령은 그 결단 이후 실제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능력과 삶의 방식을 나타냅니다.
바울의 고백 —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이 성령의 삶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 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가장 강렬한 언어로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 고백 속에는 물과 성령의 거듭남이 온전히 통합되어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은 바로 옛 자아, 육신의 정욕이 죽었다는 물의 의미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그리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것은 성령께서 그 사람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게 하시는 능력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더 이상 자기 자신의 힘과 의지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옛 자아가 이미 죽었음을 인정하고, 그 빈자리에 그리스도의 영이 사시며 자신을 이끌어가심을 신뢰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신 "물과 성령으로 나는" 삶의 실제적인 모습입니다.
나가며 — 거듭남은 사건이자 삶이다
요한복음 3장 5절의 말씀은 단회적 사건과 지속적 삶의 방식을 동시에 요구합니다. 물로 거듭난다는 것은 어느 한순간, 우리가 세례를 통해 옛 자아의 죽음을 선언하고 하나님 앞에 선한 양심으로 서기로 결단하는 사건입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그 이후 평생에 걸쳐, 더 이상 내 뜻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을 따라 살아가는 지속적인 삶의 여정입니다.
니고데모에게 필요했던 것은 더 나은 율법 준수가 아니라, 바로 이 근본적인 변화였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질문이 던져집니다. 우리는 옛 자아의 죽음을 진정으로 경험했습니까? 그리고 지금,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살아 계셔서 하나님의 뜻대로 나를 이끌어가고 계십니까?
이 두 질문에 "예"라고 답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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