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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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이루신 하나님의 나라 예수님의 복음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선포이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태복음 4:17) 또한 갈릴리 온 지방을 다니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마태복음 4:23)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마가복음 1:15)  라고 기록한다. 예수님의 복음의 중심은 죄 사함 자체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 였다. 예수님은 죽어서 가는 장소를 먼저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들 가운데 왕으로 다스리기 시작하셨음을 선포하셨다. 하나님의 통치란 무엇인가? 세상 나라는 사람의 욕심과 죄가 다스리는 곳이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뜻이 다스리는 나라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며 말씀하셨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태복음 6:10)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의미이다. 즉 하나님의 통치는 사람을 억압하는 지배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시고 의로우시며 사랑의 뜻이 우리의 삶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마태복음 11장 12절이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마태복음 11:12) 누가복음은 같은 내용을 이렇게 기록한다.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힘써 들어가느니라." (누가복음 16:16) 누가복음은 초점을 천국이 공격받는 데 두기보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 안으로 힘써 들어오는 모습에 두고 있다. 세례 요한 이후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시자 이전까지 하나님께...

성령과 함께 살아간다


양심, 분별,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

많은 그리스도인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한 가지 질문을 품는다.

"지금 내가 선택하려는 것이 정말 하나님의 뜻인가?"

누군가는 "성령께 기도하면 알 수 있다."고 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성경을 보면 답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면, 사도들과 초대교회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고민과 토론, 그리고 분별의 과정을 거쳤음을 발견하게 된다.

바울도 양심을 따라 살았다.

바울은 대제사장 앞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사도행전 23:1)

놀라운 것은 이 말이 예수님을 믿은 이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도 하나님을 섬긴다고 믿었다. 그는 교회를 핍박했고, 스데반의 죽음을 옳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께 충성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완전히 반대의 삶을 살게 된다.

그런데도 그는 말한다.

"나는 항상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

이 말은 양심이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양심은 자신이 참이라고 믿는 것에 대해 정직하게 반응하는 내적인 증인이다. 그래서 진리에 대한 이해가 달라지면 양심의 판단도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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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들도 서로 달랐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을 받았음에도 서로 의견이 달랐다. 베드로는 안디옥에서 유대인들을 의식하여 이방인들과 식사하지 않았다.

바울은 그것이 복음에 어긋난다고 공개적으로 책망했다.

(갈라디아서 2:11-14)

바울과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갈 것인지를 두고 심하게 다투었고 결국 서로 다른 길을 갔다.

(사도행전 15:36-41)

예루살렘 교회 역시 이방인에게 할례를 요구해야 하는가를 두고 큰 논쟁이 있었다.

(사도행전 15장)

만약 성령의 뜻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방식으로 즉시 전달되었다면 이러한 토론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모습을 보여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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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우리는..."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론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사도행전 15:28)

여기에는 "성령께서 말씀하시기를"이라는 표현이 없다. 오히려 "성령과 우리는" 이라고 말한다.

이 표현은 인간의 분별을 제거하지 않는다.

사도들은

  • 서로 토론했고

  • 베드로의 경험을 들었으며

  • 바울과 바나바의 선교를 확인했고

  • 야고보는 성경을 근거로 해석했다.

그 모든 과정 끝에 "성령과 우리는" 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성령은 인간의 생각을 대신하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분별 가운데 함께 역사하시는 분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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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은 항상 즉시 알 수 있는가?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이 마치 음성처럼 분명하게 들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바울의 선교 여행은 그렇지 않았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사도행전 16:6)

바울은 아시아로 가려 했고, 다음에는 비두니아로 가려 했다. 그러나 길이 열리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야 마게도냐 환상을 보게 된다. 바울은 처음부터 답을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계속 판단하고, 막히면 다시 판단하고, 다시 순종하며 방향을 수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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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도 인간으로 성장하셨다.

누가는 예수님을 이렇게 기록한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누가복음 2:52)

예수님은 하늘에서 완성된 어른의 모습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아기로 태어나 말을 배우고, 걸음을 배우고, 목수의 일을 배우며 성장하셨다.

히브리서도 말한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우셨다."
(히브리서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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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부분적으로 안다.

바울은 매우 중요한 고백을 한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고린도전서 13:9)

또한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아니니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고린도전서 4:4)

바울은 자신의 양심이 깨끗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조차 최종적인 기준은 아니라고 말한다. 최종적인 판단은 하나님께 속한다. 이것이 신앙인의 겸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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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보다 중요한 것은 진리를 향한 자세이다.

양심은 중요하다. 그러나 양심 자체가 진리는 아니다. 양심은 내가 이해한 진리에 따라 반응한다. 그래서 양심은 언제나 말씀을 통해, 공동체를 통해, 삶의 열매를 통해, 그리고 성령의 인도 가운데 계속 새로워져야 한다.

바울이 회심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자신의 양심을 버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해가 잘못되었음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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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뜻을 이미 완벽하게 알고 살아가는 삶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끊임없이 찾고, 잘못되면 수정하며,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삶이다.

바울은 말한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2)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모두 알게 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분별하라"고 말한다. 분별은 한 번의 계시로 끝나는 일이 아니라 평생의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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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

성령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포기하고 아무 판단도 하지 않는 삶이 아니다. 반대로 자신의 판단을 절대화하는 삶도 아니다.

성령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 말씀을 묵상하고,

  • 양심을 정직하게 지키며,

  • 공동체의 지혜를 듣고,

  • 삶의 열매를 살피며,

  • 언제든지 자신의 생각이 하나님의 진리 앞에서 수정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삶이다.

바로 이것이 초대교회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성령께서..."만 말하지 않았고, "우리는..."만 말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이렇게 고백했다.

"성령과 우리는..." (사도행전 15:28)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신앙도 이 고백 위에 서 있어야 한다.

우리는 진리를 소유한 사람들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진리를 향해 평생 걸어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신앙은 완성된 답을 주장하는 삶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 가운데 끊임없이 배우고, 분별하고, 순종하는 여정이다. 이 여정 속에서 양심은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는 절대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를 향해 자신을 비추는 정직한 거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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