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적을 본 사람과 떡을 먹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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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적을 본 사람과 떡을 먹은 사람 – 하나님과의 연합으로 이끄는 성령의 길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요한복음 6:26)
많은 사람들은 이 말씀을 단순히 "기적만 보고 따라온 사람들"에 대한 책망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예수께서 사용하신 단어는 '기적'이 아니라 '표적(σημεῖον, 세메이온)'이다.
표적은 목적이 아니다.
표적은 무엇인가를 가리키는 표시이다.
도로의 표지판은 목적지가 아니며, 목적지를 가리키는 역할을 한다.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행하신 모든 표적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보여 주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이끌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표적이 가리키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표적이 가져다준 결과만 바라보았다.
이것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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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적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오병이어는 단순히 배고픈 사람을 먹이기 위한 사건이 아니었다.
예수께서는 바로 이어서 말씀하신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
(요한복음 6:35)
사람들은 떡을 보았지만, 예수께서는 생명을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육신의 배부름을 경험했지만, 예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기적을 원했지만, 예수께서는 하나님과의 연합을 원하셨다.
결국 오병이어는 떡의 기적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드러내는 표적이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흙으로 지으신 후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창세기 2:7)
인간은 단순한 육체가 아니다.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
욥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영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숨이 나를 살리시느니라."
(욥기 33:4)
생명의 시작은 하나님의 영이었다. 그러므로 인간 존재의 목적 역시 하나님과 분리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 안에서 사는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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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의 목적은 하나님과의 연합이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은 단순히 규칙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율법은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고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율법 자체를 붙잡기 시작했다.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마가복음 7:6)
또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마태복음 23장)
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셨다.
외식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생명 있는 관계를 잃어버린 채 종교 행위만 남은 상태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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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새 율법이 아니라 새 영이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놀랍게도 새로운 율법을 예언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새 영이었다.
에스겔은 말한다.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에스겔 36:26-27)
예레미야도 말한다.
"내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리라."
(예레미야 31:33)
하나님은 돌판에 기록된 율법보다 사람의 마음에 역사하시는 성령을 약속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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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오신 목적
예수께서는 단순히 죄 사함을 선포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인간의 끊어진 생명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오셨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신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요한복음 15:4)
또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요한복음 14:20)
신앙의 핵심은 종교 활동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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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은 하나님과의 연합을 이루시는 분
바울은 성령을 단순한 능력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너희는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린도전서 3:16)
또한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고린도전서 6:17)
성령은 단순히 은사를 주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을 연합하게 하시는 분이다. 이것이 창조의 목적이며, 구속의 목적이고, 복음의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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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삶은 열매를 맺는 삶이다
예수께서는 포도나무 비유를 말씀하시며 열매의 비밀을 알려 주셨다. 열매는 노력해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생명이 흐르고 자연스럽게 열매가 맺힌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사람이 내 안에 거하고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요한복음 15:5)
라고 말씀하셨다.
바울 역시 같은 원리를 말한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갈라디아서 5:22-23)
열매는 성령과의 연합에서 흘러나오는 결과이지, 인간의 노력만으로 만들어 내는 결과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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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질문
오늘날에도 우리는 예수를 찾는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 때문에 예수를 찾는가?
병이 낫기 위해서인가, 사업이 잘되기 위해서인가,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하나님 자신을 만나기 위해서인가.
예수께서는 지금도 같은 질문을 하신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냐,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냐."
이 질문은 모든 시대의 신앙인을 향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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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음말
기독교 신앙의 중심은 복을 받는 데 있지 않다. 또한 종교적 행위를 완성하는 데에도 있지 않다. 성경이 창조에서부터 계시하는 목적은 하나님께서 사람 안에 생명을 주시고, 사람이 하나님의 영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예수께서 오신 목적도 이 생명을 회복하는 데 있으며, 성령은 그 생명을 우리 안에 이루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신앙의 가장 깊은 목적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얻는 것이다.
표적은 언제나 그 하나님을 가리킨다. 표적을 보는 사람은 하나님께 이끌리고, 떡만 바라보는 사람은 표적에서 멈춘다.
예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표적 너머, 곧 하나님과의 연합과 성령 안에서의 새로운 생명으로 초대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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